1. 서안개황
서안은 옛날에 장안으로 불리었으며 일찍이 13개 왕조가 서안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서안은 세계의 유명한 도시 아테네, 카이로, 로마와 함께 세계 4대 문명고도로 지정이 됐습니다.
서안시는 중국대륙의 내륙 황하유역 중부의 관중분지에 자리하고 있고, 면적은 9,983㎢ 입니다. 서안의 지세는 남이 높고 북이 낮으며 진령 산맥이 서안 남부를 가로 지르고 산맥의 높이는 해발 2,000~2,800m로서 중국의 북방과 남방의 중요한 분계선 역할을 합니다. 서안의 기후는 온난대 기후로서 따뜻하고 사계절이 분명합니다. 연 평균 기온은 13.3℃ 이며 따뜻한 봄인 3-5월이나 천고마비의 계절인 9-11월 중 서안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 입니다. 섬서성의 성도로서 서안은 중국 서부지역의 주요 공업발전 기지이기도 합니다.
인구는 7백만이 넘고 주요산업으로 기계, 전자, 전기공학, 항공우주, 경공업 산업이 발달했으며 500여 개소의 과학기술연구기구, 40여 개소의 대학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서안은 한마디로 발달된 경제, 아름다운 환경, 문명화된 단정하고 깨끗한 국제화 도시입니다.

2. 명승고적
서안은 중국 고대사회의 “천연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고 중국의 유명한 관광도시로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규모가 가장 큰 고대성벽; 총면적 108㎢의 주(周), 진(秦), 한(漢), 당(唐)의 4대 유적; 웅장하고 거대한 세계8대 기적 중의 하나인 병마용; 남으로 여산(驪山)을 끼고 북으로는 위수(渭水)가 흐르는 유람의 명승지인 화청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석 박물관인 비림 박물관; 서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대안탑; 6,000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반파유적박물관;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종각(鐘樓)등이 있습니다. 서안은 각종 문물 12만여 개를 수장하고 있으며 많은 문물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진귀한 보물들이다.

3. 먹거리 및 민간공예
서안은 찬란한 역사를 지닌 세계에서 유명한 고도입니다. 서안의 먹거리 및 민간공예 또한 중국에서 그 명성이 대단합니다. 예를 들면 서안에만 있는 양고기소고기 파오모(泡馍), 쌀과 누룩으로 빚은 농주(酒),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는 후루토우(葫芦头), 뒷맛이 일품인 로우지아모(肉夹馍), 종류가 다양한 섬서 지방의 량피(凉皮), 회족 음식 맛인 지아산(贾三) 관탕 찐빵, 메밀이나 수수 가로로 만든 영양이 풍부한 틀국수 지미옌허러(荠面饸饹), 섬서 지방의 특색을 지닌 국수 치산사오즈미옌(岐山臊子面) 등의 먹거리가 있습니다.
서안에 널리 전해져 오는 민간예술 또한 매우 풍부하고 다채롭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집단 명절놀이 써후오(社火), 그림자극 피잉(皮影), 꼭두각시극 무오우(木偶), 섬서 지방색이 풍부한 각종 설창 문예, 곡예나 잡기, 궁전 불꽃놀이 등이 있으며 또 종이 공예, 종이 인형 공예, 등(燈) 공예, 자수, 날염 공예 등의 수공예제품; 민간 예술작품으로 조각과 소조, 진흙 조각, 전통 희곡의 얼굴 분장의 리옌푸(脸谱), 정월에 방안에 붙이는 그림인 목판 세화, 농민화(農民畵)등의 민간 예술작품들이 있습니다.

- 가볼만한 곳 -

1.황제릉(黄帝陵)
황제(黄帝)는 성이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어지러운 중원을 평정하고 고대문명을 일으키는데 이바지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역사적 투명성은 아직 흐릿하다. 묘 자체에 대해서도 “황제가 붕어하여 교산에 묻혔다고 하기도 하고”, 황제는 용을 타고 승천하고 그 남은 의복을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입구부터 걸어서 3분, 황제의 이름을 딴 헌원묘는 현대 사람들이 황제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새로 지은 사당인데 사면이 탁트이고 지붕에도 원형으로 구멍을 내어, 오전에 해가 일정한 각도에 다다르면 북쪽 돌판에 양각한 황제의 초상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난다. 이곳에서 해마다 봄가을에 청명절 중양절 행사로 정치인등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프로젝타급의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 규모의 사당과 대문을 짓기 위해 각종 단체에서 수억위안을 쏟아부었다. 또 바로 이 사당을 중심으로 하는 새 건축물들이 몇 년새에 입장료를 서너배 올려놓기도 한 것이다.
그 앞에 한무선대(漢武仙臺)라는 비석이 세워진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화단 크기의 공터가 나타나는데 이는 통일 중국의 기반을 굳힌 한 (漢)나라 무제 武帝가 민족의 시조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아놓은 돈대다. 이전에도 후에도 수많은 임금과 정치가들이 민족의 단결과 통치를 위해 황제릉에 와 제사를 지냈다.
능을 돌아 작은 뒷 길로 다시 언덕의 끄트머리를 오르면 교산쌍어 (橋山雙馭)라고 새겨진 현대판 누각이 나타나는데, 예의 그 한무제가 이 곳에 와 새겨놓은 비석에서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2. 병마용(兵马俑)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진시황이 사후에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거리에 있으며, 진시황릉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갱 내에는 60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陶俑)이 묻혀 있었으며, 현재에는 1000개 정도가 진열되어 있다. 더욱 놀랄 만한 점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병마용갱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호갱은 당시 농민이 발견한 것이고, 후에 2, 3호갱이 발견되었다. 세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동서 길이가 230m, 넓이는 612m로 총 면적이 12km2이다. 1호갱은 동서쪽을 향한 긴 모양으로 장군과 병사가 배열되어 있고, 2호갱은 면적이 약6000m2이며,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2호갱은 발굴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시되어 있다. 3호갱은 면적이 520m2으로 凹모양이며, 병마용들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역시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3개의 전시관 모두 갱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3. 비림(碑林)
비림은 1087년 북송 철종 2년에 세워졌다. 현재 한(漢)대부터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비석과 1천여개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비석들이 모여 마치 숲을 이룬 것 같다 하여’ 비림(碑林)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총 3000여 개의 비석이 있으며, 그 중 개성 석경은 114개의 석판에 유교경전13경(655,025자)을 조각한 것으로, 명사들의 진적비등이 집중되어 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이자 고대 문헌서적과 비석의 조각 도안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으로, 대외 문화 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서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4. 화청지(華淸池)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의 당대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옛날까지 수려한 풍경과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특히 당나라의 유명한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겨울을 지내던 곳으로, 온천이 유명해지자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화려한 누각들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호수를 중심으로 양귀비가 실제로 목욕을 했다는 목욕탕과 양귀비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1936년 당시 섬서정부가 정식으로 “화청지”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였다. 또한 1936년 12우러 12일에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열렸던 “서안사변”도 이곳에서 발생했으며, 현재에도 여산 정상에는 “착장정(捉蔣亭)”이라는 정자가 남아 있다.

5. 대안탑(大雁塔)
서안 대안탑은 중국에서 비교적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당대의 옛 탑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대안탑은 당고중(唐高宗) 영휘(永徽) 3년에 세워졌다. 자은사(慈恩寺)에 세워져 자은사 탑이라고도 불린다. 대자은사는 당나라때 장안(長安)에서 가장 유명한 웅장하고 화려한 절 이었다. 대안탑은 당진관(唐贞观)22년에 태자 이치(李治)가 어머니 문덕(文德)황후를 추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당삼장(唐三藏) 현장(玄奘)은 대자은사에서 사찰 관리 일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때 불경을 번역하고 불교 종파를 창립하였다. 절 내에 대안탑을 지을 때 당삼장이 직접 공사를 감독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대자은사는 중국 불교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되었고 줄곧 국내외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안탑은 처음에는 5층 건물이었고 무측천(武则天) 재위시 개수하였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보수 하였다. 지금의 대안탑은 7층 이고 높이는 총 64m 로 정방향 모양이다. 대안탑은 벽돌로 세워졌고 각층의 벽면은 주방(柱枋)、란액(栏额) 같은 나무로 지었다. 각층 벽의 사면에는 아치 형 문이 있다. 이러한 누각 식 석탑은 조형이 간결하고 기세가 웅장하여 중국 불교 건축 예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대안탑 밑 층의 남문 양측에 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인 저수량(褚遂良)이 쓴 두 개의 비석이 박혀 있는데 하나는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圣教序)”이고 다른 하나는 당 고종이 저술한 “대당삼장성교서기(大唐三藏圣教序记)”이다. 비석 양측에 덩굴풀 무늬의 도안이 있는데 도안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고 조형은 생동감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당대(唐代)의 서예, 회화, 조각예술을 연구하는 중요한 문물이다.